대학교에 입학하던 때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함께 할 동기들의 얼굴을 처음 마주하고, 앞으로 4년간 지내게 될 곳을 신기하게 둘러보던 내 모습. 그리 멀지 않은 일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 취업 수기를 쓰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까마득한 일이 되어버린 게 맞나 보다.
대학생활은 남들 보다 웬만큼 즐겼다고 자평한다. 타인도 아마 비슷한 평가를 내릴 것이다. 지도 교수님께서는 나의 교사 임용시험 합격 소식을 듣고 나와 같은 스타일의 학생이 합격한 것은 꽤나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씀하실 정도니까. 1학년 때는 동기들과 어울려 열심히 놀았고, 2학년 때는 과 대표, 3학년 때는 부학회장. 항상 멘토링, 학원, 과외 등으로 용돈벌이는 필수. 한 마디로 전형적인 모범생 스타일이 아닌, 학교생활을 무진장 즐겼던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내가 어떻게 합격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냐 물으면, 글쎄,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
1학년 때 동기들과 어울려 대학생활을 즐기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지만, 첫 여름 방학부터 학과 소모임에서 전공 공부를 시작했다. 방학을 반납하고 고향에 내려가지 않는 것은 스무 살 청춘에게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일찍 소모임에서 공부를 시작한 덕분에 임용시험에 대한 공포가 많이 없었던 것 같다. 학과 행사인 문학 기행은 교수님의 수업 시간에 활자로 접했던 문인의 삶을 통째로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였다. 아마도 문학 기행 중에 처음으로 그 생각을 한 것 같다. ‘나 이 학교 국어교육과에 오길 참 잘한 것 같아.’
2학년부터는 본격적으로 교사가 되기 위한 준비로 수업실연을 한 기억이 난다. 우리 지도 교수님의 수업이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는데, 동기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를 ‘지도 교수님의 딸’이라고 놀리기도 하였다. ‘비판’이라는 것이 나쁜 줄로만 알았던 나는 항상 ‘수용’적인 태도만을 유지하는 삶을 살았다. 그것이 나의 진심이 아닌, 단순히 미움 받기 싫은 비겁함이었다는 것을 이때 깨달았다. 어떠한 글에 대한 논평으로 나의 진심을 정중히 표현하는 연습, 의문이 가는 점은 부끄러워 하지 않고 손을 들어 질문을 하는 연습, 다수의 청중 앞에서 발표나 수업을 하는 연습. 다양한 연습과 가르침 속에서 나는 비판의 참맛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태도는 특히 교사 임용시험 공부에서도 필수적인 부분이었다. 다양한 가설들과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주제에 대한 분석력은 이러한 비판적 태도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3학년 때는 학과 부학회장을 맡아 후배들과 열심히 과 생활을 하고, 다양한 행사를 주최했다. 덕분에 교사의 필수 자질인 리더십과 책임감을 많이 기를 수 있던 좋은 경험이었다. 4학년 때는 본격적으로 임용시험 공부를 시작했다. 학과 정독실 덕분에 편하게 공부할 환경이 있어 사범대 건물에 늘 붙어살았기 때문에 동기들은 서로를 ‘사범대 지박령’이라고 자조적으로 말하곤 했다. 그렇게 졸업 후 최종 탈락의 아픔을 한 번 겪고, 올해 경남 지역 최종 합격의 기쁨을 안았다. 임용 2차 시험 준비를 할 때 학과에서 집중적인 지원을 받아 연습한 덕분인지 2차 시험에서 수업실연 만점이라는 과분한 점수를 받았다. 이 소식을 지도 교수님께 전했던 기억이 불과 몇 달 전이라니 감회가 새롭다.
얼마 전, 여름 방학 중 읽으려고『매일 매일 교사가 되는 중입니다』라는 제목의 책을 샀다. 지금 나는 매일 매일 진정한 선생님이 되는 과정에 있다. 그 단단한 토대와 양분이 되어준 안동대학교 국어교육과에 이 글을 바친다.